기사제목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제13차 심포지엄, 문명전환에 응답하는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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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제13차 심포지엄, 문명전환에 응답하는 신학】

『코로나19, 문명의 전환과 한국교회』
기사입력 2021.07.22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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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19 유행 상황에서 생각하는 '하나님의 영''인간의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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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벨커 교수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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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성 교수 번역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저는 오늘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에, 그리고 특별히 이범성 교수님께, 이러한 방법을 통해 여러분에게 말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초대해 주신 점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여러분께서 제게 설정해주신 큰 주제는 코로나-19시대에 생각하는 '하나님의 영''인간의 영'”입니다. 그리고 이 큰 주제에 속한 세부 주제를 여섯 가지 질문 형식으로 요청하셨습니다. 이 질문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코로나-19 대유행이 인류 종교와 문명에 전환점이 된다고 보십니까?

2. 코로나-19 대유행을 지내고나면 종교들과 특히 기독교회에서 무엇이 바뀌게 될까요?

3. '교회의 영'(성령)'희망의 영'(성령) 아니겠습니까? 교회가 보건당국의 조치에 반대해서 시민사회로부터 원성을 사게 되었는데도 교회는 여전히 '사회의 희망'이라고 자 처할 수 있을까요?

4. Covid-19 대유행을 극복하는 일에 기독교신학이 자연과학과 무엇을 협력할 수 있을까요?

5. 코로나 대유행을 만난 인간에게 '피조세계에 대한 위임통치 명령'(1:28)은 새롭게 해석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6. 온라인 성찬은 직접 모이는 성찬과 그 유효성에 있어서 동일합니까?

 

저는 이상의 질문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싶습니다.

 

 

1. 코로나 전염병은 일반적으로 인류문명과 특히 종교, 교회 및 신학에 어떤 도전을 제공합니까?

 

당신은 코로나 전염병은 종교와 인간 문명의 전환점입니까?”라고 물으셨지요. 어떤 면에서 코로나-19 대유행은 지구적 위기로서 우리에게 직면해 있기 때문에 실제로 전환점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바이러스는 국경도 종교적 경계도, 과학이나 기타 경계에서도 멈추지 않습니다.

 

인류는 의학 분야, 과학, 정치, 경제, 미디어, 교육 시스템, 법률 시스템 그리고 가족 범위뿐만 아니라 종교, 교회 및 신학 분야에서 수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위험을 제한하기 위해 고안된 것처럼 보이는 많은 전략이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지구 기후 위기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 코로나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해야합니다. 어리석고 궁극적으로 파괴적인 것으로 드러날 세력들만이 이 긴급한 도전을 경시하고 부인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 실제적이고 경향상 치명적인 위험에 대응하려면 세계 모든 국가의 모든 사회 세력들이 함께 협력해야 하겠습니다.

 

나는 종교, 교회 및 신학의 중요한, 아마도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원시적 유신론과 마찬가지로 원시적 무신론에 대한 비판적이고 자아성찰적인 비판적 논쟁에 있다고 봅니다. 이 유신론자와 무신론자 양면으로부터 우리는, 이 팬데믹 위기에 고조되는 질문으로 인해 완전히 치명적인 작용을 하게 될 수 있는, 잘못된 신념, 즉 신에 대한, 신의 전능성에 대한, 신의 창조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만나게 됩니다.

 

원시 무신론적 개념은 특히 발달생물학자 리차드 다윈의 책, 신의 망상(The God Delusion, 2006); 눈 먼 시계제작자(The Blind Watchmaker, 1986); 창조의 기만(The Greatest Show on Earth: The Evidence for Evolution, 2009)을 통해 확산되었습니다.

 

종교에 대하여, 아주 특별히 기독교 종교를 향한 이 적극적인 공격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많은 사람들, 단지 경건한 사람들뿐 아니라 과학교육을 받은 지식인들도 다윈의 '공격적인 수사법과 그의 종교적 사고'에 대한 캐리커처에 심한 반감을 느꼈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대부분 철학적으로나 형이상학적으로 기초된 - 그렇지만 마찬가지로 원시적인 - 종교적이고 신학적인 유신론은 마치 위험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원시적 유신론은 Rudolf Bultmann이나 Wolfhart Pannenberg와 같은 무게있는 신학자들이 사용하고 종종 인용하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결정하는 현실" 과 같은 공식 뒤에 그 실체를 가리고 숨어있습니다.

 

왜 우리는 이 유신론을 "원시적"이라고 불러야합니까? 셀 수없이 많은 죽음을 불러온 이 전 지구적 팬데믹 시기에 이 원시적 유신론이 왜 완전히 파괴적으로 작동하게 되나요? 그것은 왜 하나님의 전능함에 대한 믿음과, 전능하신 창조주와 그의 절대 의존적피조물과의 관계에 대한 믿음의 바른 표현이 아닌 걸까요?

 

첫째, 그 유신론은 원시적인 신이해, 전능성 이해, 창조 이해 때문에 성서전승의 증언을 지나쳐가기 때문 에 원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그 유신론은 또한 유한하고, 다양하게 고통당하며, 위험에 처하게 되고, 또 위험을 자초하는 본성적인 생명에 대한 인간의 경험을 지나쳐 버리기 때문입니다. 신의 전능함과 신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피조물에 관한 이 유신론의 진술을 통해, 이 유신론은 개별적인 운명의 시기를 자극하고 동시에 지구적 재앙 에 점점 더 강하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유발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그러한 고통과 그러한 고난을 허용하실 수 있냐?”고 말입니다. 답할 수없는 신정론의 질문은 종교적 위선 을 강요하거나 불신을 불러 일으켜, 둘 다 치명적입니다.

 

억압적인 대유행 시대에 아주 시급한 가장 중요한 신학적 임무는 성서전승이 제공하는 창조신학적 정직성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성서전승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창조물의 질서, 아름다움 및 번성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다른 한편, 성서전승은 또한 지상 피조물의 곤경, 허무함 그리고 유한성에 대한 하소연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지상세계는 낙원이 아니며 신적인 시계 제작자가 - 도킨스가 말한 것처럼 그가 모든 것을 보든지 눈이 멀었든지 간에 - 작동하게 만든 완벽한 시계도 아닙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의 창조에 대해 중심 되는 성서적 창조보도에 따르면, 하나님은 창조를 위한 주도권을 발전시키시지만 또한 그는 피조물에게 엄청난 몫의 창조력을 주십니다. 하늘은 나누는 힘을 얻고, 별들은 시간과 계절을 지배하고, 지구는 생물을 생산하고, 바다는 생명을 생산하고, 사람(남성과 여성)은 식물과 동물을 다스릴 위임을 받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창조의 바른 질서에 기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창조를 좋다고, 히브리어 TOB이라고, 생명을 증진시키라고 부르십니다. 하지만 제가 말했듯이 창조는 낙원이라든지 찬란한 것이 아니고, 분명하게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세계와는 구분되는 것입니다.

 

당연한 것은 피조물의 생명은 유한하고 죽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자연적인 생명은 필연적으로 다른 생명을 희생시키면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수학자이자 과학자이자 철학자인 Alfred North Whitehead가 말했듯이 자연의 삶은 강도질입니다.

 

자연적인 생명은 비옥함, 아름다움 그리고 선한 것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파괴적인 악천후, 토네이도, 쓰나미 및 바이러스도 그 자연적 생명의 일부입니다. 자연의 생명은 다른 생명을 희생하면서 살아야한다는 이러한 사실 외에도 사람들은 자신의 힘을 사용하여 다른 생명체를 위험에 빠뜨리거나 남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악의와 욕심뿐만 아니라 어리석음과 태만을 가져오는 힙입니다. 성경은 그 결과를 죄라고 부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이 세상과 직면하게 하신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원시적 유신론이 반복해서 우리를 설득하고 있고 설득해 왔던 것처럼,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모든 것과 모든 일을 수행하도록 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전능은 고통과 고난에서 새롭고 좋은 것을 창조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연계의 어떤 것이 고통과 고난을 초래할 때 항상 즉시 개입하는 천상의 소방수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심지어 사람들이 계속해서 주어진 힘을 남용하는 것을 허용합니다. [그것을] 성서전승들은 하나님이 "얼굴을 돌리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피조물을그들에게 적대적인 권세나 그들 자신의 무력함과 악의에 버리신 것입니다.

 

이 성서적으로 기초되고 동시에 현실적인 관점에서, 먼저 이 지상 창조의 엄청난 신빙성, 아름다움 및 생산력은 감사하게 인정되어야하며, 이는 그것을 다루는 책임 있는 행동으로 이어져야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창조는 자연과 우주 안에서 소멸되지 않고, 또한 보이는 세계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도 다양한 영적 능력으로 창조하셨으며, 하나님께서는 그의 선한 영을 우리에게 나누고자 하신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 선한 영은 자연적 창조 안에서 악하고 파괴적인 세력에 대항하여 우리를 새로운 창조, 오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기를 원하며, 그 나라는 더 이상 유한성, 허무, 그리고 죄의 힘에 종속되지 않을 것입니다.

 

다음에는 “2. 코로나-19 대유행을 지내고나면 종교들과 특히 기독교회에서 무엇이 바뀌게 될까요?”를 게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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