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편한목회-남현교회 이춘복 목사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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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한목회-남현교회 이춘복 목사를 만나다

기사입력 2019.06.17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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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교회 이춘복 목사가 514() 56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가 열린 광주겨자씨교회(나학수 목사)에서 제2회 총회장상을 받았다. 그리고 남현교회 30에는 구체적으로 없는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 목사는 곧 '편한 목회'라는 책을 발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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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에서 기도하는 이춘복 목사이다
 

 

어디서 태어나셨습니까?

제가 충청남도 부여에서 불신 가정에서 태어나 처음 예수를 믿었고 8남매 다 구원시켰죠. 중학교 2학년 때 너무 먹고 살기 어려워서 스스로 교회를 찾아갔죠. 어린 시절이었지만 어떤 돌파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초등학교 4학년 때는 차라리 죽는 게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어려웠죠. 그래서 저는 초등학교만 집에서 졸업했어요. 중학교, 고등학교도 검정고시, 대학과 대학원까지 혼자 벌고 다니면서 안 해 본 게 없어요. 농공상 장사도 5, 대학에 다니면서도 장사를 해서 야간으로 대학을 다녔죠. 그렇게 하나님께 훈련을 받았죠.

 

대학은 뭘 전공하셨어요?

신학을 전공했죠. 총신대학교는 아니고 안양신학교 야간을 나왔어요. 한국에서 신학교는 거기 하나 밖에 없는 줄 알았어요. 가족도 예수 믿는 사람도 없고 그러니까. 그래서 거기 들어가서 공부하다보니까, 총신대학교라는 넓은 세계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동기생들 중에서는 졸업하자마자 나 혼자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으로 왔어요. 실력에서도 다른 사람들은 생각을 못한 거지. 대학교 4년 동안 장사했지만 4년 장학생도 했고. 그리고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으로 온 거야. 와서는 처음부터 개척을 하려고 생각했지. 왜 개척을 하려고 생각했냐면, 내가 예수 믿은 것 감사하고, 목사 된 것 감사해서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뭔가 하나를 해놔야 생각하고, 교회는 하나 세워야 하지 않냐. 그래야 좀 덜 부끄러울 것 같고. 교회는 한 30명 되는 교회 하나 세우려고 했어요. 그것만 해도 난 출세한 거니까.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3학년 때까지 교육 전도사로 있다가, 졸업시험 끝나고 바로 개척했죠.

 

농공상 안 해 본 것이 없다는데요. 그 이야기 해주시죠.

그거 얘기하려면 하루 종일 얘기해야지. 그래서 제가 처음에 시골에서 어려우니까,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나무를 하러다니고, 밭 매고, 지게 지고, 그런 걸 하면서 초등학교 때도 6학년 졸업 2개월 앞두고 학교를 못 갔죠. 졸업비를 못 냈으니까. 지금은 졸업장이 있죠. 그때 담임선생님이 어떤 아이를 보내서 너는 집에 그냥 두기 아깝다. 저는 학교도 못가고 먹을 것도 없으니까 집에 나무하면서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어떤 아이를 보내서 옛날에 고등공민학교라고 있어. 중학교가 아닌 곳, 검정고시를 봐야하는 곳. 거기도 가지를 못해서 농협 상무가 소개해서 그분이 그나마 등록금을 대서 그렇게 해서 학교를 다닌 거예요.

 

예수 믿기 전이네요?

그렇죠. 그렇게 해서, 중학교 때도, 집에서 다녔으니까요. 계속 일요일은 산에 가서 나무하고, 밭을 매야 하고. 중학교 나오니까 집에서 있을 수 없어서, 학교도 고등학교 검정고시까지 합격해놓고, 등록금이 없으니까 서울로 올라와서 공장을 다니기 시작했죠. 공장에서 요즘으로 말하는 선반 쇠 깎는 것도 하고, 고등학교 과정을 스스로 공부해서 검정고시를 보고. 그리고 군대를 다녀와서 대학교를 갔죠. 저는 대학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어요. 다만 돈 벌어서 돈 원수갚으라고 했는데. 그렇게 하다가 군대 가서 예수를 진짜로 만난 거예요. 제가 중학교 때 스스로 교회를 찾아갔지만, 서울에 올라와서는 완전히 잊고 살다가, 군대에 가서 내가 열심히 믿음생활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죠. 군대는 71년부터 73년도 3년 복무하고, 거기서 예수를 만나고 너무 가슴이 뜨거워서 나와서 제일 먼저 개척교회를 찾아간 거예요. 큰 교회는 나 같은 건 쓸데없을 것 같으니까 개척교회를 찾아간 거예요. 봉사하려고. 그래서 조그마한 교회를 찾아갔는데, 그 교회가 예장대신이어서. 거기서 신앙생활하면서 청년으로써 서리집사까지 됐죠. 그때 담임목사께서 권면하기를 신학을 하라. 그런데 실력도 없고 돈도 없으니까 야간신학교에 들어갔죠. 제가 군대를 제대하고서 뭘 했냐면 주일을 지키기 위해서 장사를 시작했어요. ‘중상-중간상인이라고 해서 물건 떼다가 가게에 대주는 장사죠. 주로 빵, , 식료품 같은 먹는 것을 했죠. 중고 자전거 한 대 사서는 상자 하나 사고, 물건 하나 뗄 것 하나 산거죠. 이런 이야기는 우리 남현교회 30에는 구체적으로 없죠. 남현교회 개척 후에는 자료가 다 있어요.

 

목사님의 말씀을 듣다보니 두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첫째는 삶의 순간순간마다 살기 위해서 찾아간 곳이 교회라고 했습니다. 또 하나는 그렇게 어렵게 악으로 깡으로 살다보면 성격이 험악해지잖아요. 그런데 목사님은 전혀 그런 게 없으신 것 같아요. 비록 목사님의 속마음은 모르겠습니다만. 여기에 비밀이 있습니다. 말씀해주시죠.

우리가 쉽게 말하면 하나님 은혜고, 제가 성품을 잘 타고 난 것 같아요. 아버지도 성품을 잘 타고 난 것 같아요. 아버님(이홍구)이 굉장히 사람들에게 베풀기 좋아하고, 퍼주기 좋아해서 그래서 집안이 망한 거죠.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까요. 그리고 어머니는 굉장히 강한 편인데 역시 정이 많아서 다 퍼줬어요. 그 없는데도 떡을 하면 다 퍼주고. 그래서 우리 형이 엄마. 우리 먹을 것은 남겨놓고 주지하고 말할 정도로 주기를 좋아하셨어요. 다행이도 제가 그런 덕이 아닌가 싶어요. 당시 예수를 안 믿었는데도 그렇게 주셨죠, 그래서 저는 어려서부터 부모 말을 거역한다던지 이런 건 전혀 한 적이 없고. 착하게 살아왔어요.

 

딱 한 번 싸운 적이 있었는데?

살아오면서 싸움을 해보지 않았어요. 그런데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4학년생 하고 딱 한번 싸웠죠. 둘이 싸움이 붙었는데, 제가 씨름 같은 걸 잘해요. 운동신경이 있어요. 싸우다가 내다 꽂았는데 때릴 데가 없는 거야. 그래서 그냥 깔고 앉아 있었죠. 그때 싸움이라 게 먼저 울면 지는 거잖아요. 근데 내가 먼저 울음이 나올 거 같은 거야. 때릴 데가 없으니까. 근데 다행히 걔가 먼저 울더라고. 그래서 내가 이겼어. 그때 내가 그 친구에게 , 우리 형한테는 이르면 안 된다고 그랬는데. 걔는 자기 형한테 이른 거야. 그래서 걔 형이 나를 때리려고 온다는 소리 듣고 겁이 나서 학교 끝나고 우리 집까지 한 번도 안 쉬고 달렸지. 그때 그 어린 마음에도 싸웠다고 형에게 이르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걔는 형한테 이르고...

 

참 자연스럽지 않게 선하게 살았네요

배려하면서 살았어요. 예를 들면 부교역자 생활할 때도 담임목사님은 굉장히 강하신 분이에요. ‘뭐하고 있어 지금? 지금 이러고 있을 때야?’ 부교역자들에게 소리 지르고. 그때 난 항상 나는 저러면 안 되지. 부교역자들을 존중해야지하고 마음을 먹었죠. 여기도 나와 있잖아요. 부교역자가 한 번 우리 교회에 부임하면 끝까지 책임져야지. 교회 부흥은 못시켜도. 하나님 은혜죠.

 

극적인 만남도 있었다고

군대에 있을 때도 계속 배려만 하고 살은 거야. 그래서 한번은 전주에서 어떤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전화가 왔다는 거예요. 우리 교회로. 난 전주에 아는 사람 없는데. 목사님 군대 있을 때 목사님 밑에 있었대요. 누구? 윤 아무개? 그래 내가 병장 때 일병 했었어. 근데 걔는 저 때문에 예수를 믿었고. 그래서 배려를 많이 해줬고. 그는 당시 장로님 아들이고 예수 잘 믿는 사람인데도, 내가 배려 많이 해주니까 감동이 되가지고 더 잘 믿어서 사회 나와서 장로가 되고 고등학교 교장이 되어서 저를 40년 만에 찾아온 거예요. 윤 일병이 내가 그분을 내가 꼭 한번은 만나야 하는데...’ 했더니, 그 부인이 그럼 인터넷에서 이춘복을 쳐 보라고. 그런데 이춘복참치만 계속 나온 거예요. 그런데 이춘복이 목사로 나온 것을 본 거예요. 그때 윤 일병이 그래, 이분은 목사 되고도 남을 분이지하고 생각한 거예요. 그래서 교회로 연락을 해서 한번 만났어. 그때 윤 일병은 목사님. 내가 목사님 얼마나 찾은 줄 아십니까?’ 하고 말했지. 저는 제가 잘 해준 기억도 없는데. 또 어떤 분도 한 번 찾아오고. 또 어떤 분은 제가 청년 떄, 저도 어려운데 서울에 있을 때가 없어서 노동자합숙소에 있었는데, 그때 잘해줬다고 찾아오고. 저에게는 일반적이었지만 그 분들에게는 감동이었던 모양이에요. 그렇게 늘 배려만 하면서 살아온 거예요.

 

군대생활이 극적입니다

근데 재밌는 얘기는 군대 있을 때 내가 시무회장을 했어요. 시골에 있다가 서울에서 농땡이 폈으니까, 청년회장도 안 해봤지, 성가대도 안 해봤지, 회의 인도도 안 해봤지, 근데 사단 시무회장을 한 거예요. 군대에서는 열심히 했으니까. 아무것도 모르니까 하나님이 봉사를 시키니까. 마음을 뜨겁게 하시는데, 한 번은요 사단 수색대 내무반 예배를 드리는데, 군대 목사는 못하게 해. 사고가 나면 자기 진급 못하니까. 우린 뜨거워서 가서 하고. 근데 윤상병이 병장 땐데 쫓아다닌 거야. 임원들 가서 수색대대 앉았는데, 군목도 안 왔지 군종 사병도 안 왔지, 인도할 사람이 나밖에 없는 거야. 그래서 큰일 났더라고, 설교도 한 번도 안 해보고 대표기도도 안 해본 사람이 큰일 났어. 성경책 복음서 마태복음 아무거나 펴가지고 읽었는데, 그리고 대표기도를 윤 상병을 시킨 거야. 대표기도를 더듬거리면서 하더라고. 내가 사회 있을 때 예수 믿었으니까. 내가 내 안에서 설교를 했는지, 내 밖에서 했는지 몰라. 입에서 나오는 대로 설교를 했으니까. 나중에 만나서 그 얘기를 하는 거야. “목사님이 그때 자기를 대표기도 시켰는데 처음 했다는 거야. 처음해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병장이 시키니까 안 할 순 없고. 그래서 했는데 목사님은 그때 설교를 너무 잘하시더라는 거야. 나도 그때 처음이었다. 나도 무슨 말 했는지 모른다고. 읽고 그냥 얘기하고 끝났는데. 나는 그때 처음 기도하느라고 힘들었는데 목사님은 그때 설교를 잘하셨다는 거야. 그런 에피소드도 있고, 그때 군대에서 내가 봉사를 해야 뜨거워지는 구나 그래서 나와서 장사를 하면서 주일도 지키고, 그러다보니까 집사도 시키고 목사님이 대안신학을 소개를 한 거야. 야간이 있다고 해서, 낮에 장사하고, 저녁에 간 거야.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물건 떼다가 팔고, 오후 3시에 끝나면 5시에 학교 가서 오후 10시에 끝나면 11시에 집에 와 또 씻고 자면 12. 다시 새벽 3시에 일어나 이런 생활을 4년 동안. 그리고 또 교회에서는 교육전도사하고, 2학년 때부터 벌써 교육전도사 했지. 그 교회에서. 산성교회라고. 대신 쪽에. 근데 합동 쪽으로 왔어요. 그러면서도 내가 공부를 못해서 한이 맺힌 사람이기 때문에, 자전거 앞에다가 단어를 외우면서도 장학생을 했지. 차한테 부딪혀가지고 죽을 고비를 두 번 이나 넘겼고. 그래도 물건을 쌀 두가마니 무게를 싣고 다녔어요. 자전거에다가. 그 많은 물건을 하루에 다 팔고, 그리고 와서 씻고 학교가고 이런 생활을 한 거죠. 나는 목회를 시작하고 나서는 너무 편한 거예요. 세상에서 제일 편한 거지. 이번에 내가 책 내는 제목이 편한 목회아닙니까. 목회는 세상에서 제일 쉽다. 용서하고 배려하고, 육신적으로도 회사에서 사원들 생활하는 거 봐라, 새벽에 일어나서 나가고 전철에 시달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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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들이 목회를 힘들다고 해요.

, 힘들다고 해요.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제일 쉽다고 생각을 해서, 그리고 성도들을 보면 측은하고. , 저분들은 나보다 훨씬 더 고생하는 분들이구나, 내가 너무 편해. 그러니까 내가 한 번도 화를 안내고, 얼굴 붉히지 않았다고 했잖아요. 그런 마음으로 보니까 속을 썩여도 속을 썩이는 게 아니고, 그렇게 목회를 했는데, 성품상으로 좋게 타고나지 않았냐. 그리고 아무리 미운 사람도 하나님 전에 가면 다 잊어버려요. 나는 전혀 고생 하나도 안한 줄 알아.

 

이춘복! “내가 나를 말한다

저는 내가 생각해도 착한 사람이다. 근데 우리 김기성 목사님하고 오랫동안 같이 있었지만. 어떻게 살아도 베풀려고 하고, 도우려고 하고, 섬기려고 하고. 내 권리는 가능하면 포기하려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안내려고 하고. 어릴 때부터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몸에 밴 거예요. 내가 강하게 살려고 해도 안 되요. 내가 지금 굉장히 강해진 거예요. 우리 집사람이 당신 많이 변했다고, 날카로워졌다고 그래. 큰 교회를 하니까 날카로워지지 않을 수가 없다고. 내가 챙겨야 할 게 많기 때문에. 내 손에서 다 나가야 하잖아요. 현수막 하나도 내가 검토를 해야 하잖아요. 그 정도로 예민해져있고, 그 대신 시대적 감각이 있어요. 앞으로 5년 후, 10년 후를 내다 볼 수 있는 그런 것이 잘 보여요. 목회도 그런 거죠.

 

예를 들면?

2003년도에 그게 나와요. 2003년도에 내가 교회를 90%를 바꿨습니다. 예를 들면 2002년도가 세 번째 안식년이야. 이번에 회기별 모임 했었잖아요. 그때 내가 강의를 했어요. 그때 교회갱신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1시간 20분을 강의를 했어요. 21년 동안은 헌법에 있는 그대로, 지금 우리나라 대한예수교 헌법에 보면, 예배 중에는 웃지도 말고, 돌아보지도 않고, 박수도 안치고, 여자들 강단에 못 올라오게 하고. 그런 거예요. 그런 거만 하다가. 내가 세 번째 안식년을 하고 교회를 그만두려고 했어요. 너무 답답해서. 50, 60년 된 교회 헌법을 가지고 목회하려고 하니까,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앞으로 이런 목회를 하면 되겠는데, 합동측에서 하는 게 고정관념이 있어요. 그래서 내가 교회를 안 하고 선교를 나가려고 하다가, 하나님께서 우리 집사람을 통해서 다시 목회 쪽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목회를 하자. 21세기 목회. 우리교회 오면 오후예배를 한 번 보여줄 수도 있지만. 아주 싱어를 올라가서 워십하고, 드라마 예배, 뮤지컬을 해요. 완전히 바꿨어요. 2001년도에 뭘 봤냐면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마누라 말고 다 바꿔라! 예요. 그래서 우리 교회 구호가 뭐냐면, 성경 말고 다 바꿔라. 성경과 교리 말고는 다 바꿔라.

 

그게 개혁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게 진리인 줄 아는 거죠. 진리는 말씀에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신령과 진정은 조용한 게 아니라, 마음 중심이지 않겠습니까. 팔팔 뛰어도 마음 중심이 하나님께 있으면 드려진 거고, 아무리 조용히 해도, 집에 연탄걱정하면 그건 신령과 진정이 아니고. 그래서 그때 완전히 바뀌어 버려서, 2003년도에 모든 조직과 운영과 철학까지 다 바꿨어요. 우리 교인들 3분의 1이 떨어져나갈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다 따라온 거예요. 그때부터 우리가 급성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큰 교회를 지은 겁니다. 교회가 차고 넘쳐가지고. 나는 교회 안 지으려고 그랬고, 근데 그 장로님이 오셔서, 나는 교회 안 지으려고 그랬거든요. 나는 30명 하려고 했는데, 그때만 해도 천명이 모였는데, 이것만해도 되는데.

 

지금은 어떻게 되시는데요.

지금 등록 숫자는 만 삼천 명입니다. 우리는 차량운영도 안하고요. 갈라면 보내줍니다. 개척교회 할 때 갈사람 가라고 합니다. 우리 개척교회 일곱 개째 하고 있잖아요. 부목사님들. 그러니까 나는 내 욕심을 안 버리고, 우리 장로님들 뭐라고 하면 좀 덜하면 되잖아요. 교회가 덜 부흥되면 되잖아요. 우리가 부흥해서 얼마나 더 크게 만들게. 지금도 감사한데. 안 지으려고 했는데 장로님이 오셔서 그렇게, 그런 스토리가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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