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강남노회 성림교회 여준국 장로는 은퇴 장로이다. 1978년 4월 20일(목) 장로로 장립 받고 1994년 5월 5일(목)은퇴했다. 여 장로는 황해도 송화군 진풍면 내안리((內安里)에서 주후 1923년 8월 3일(금) 태어났다. 당시 내안리에는 함양 여씨(咸陽呂氏)의 동족 마을이 있다. 1941년 2월 황해도 사리원농업학교 수의축산과를 졸업하고 1943년 2월 황해도 송화군 진충면 진풍국민학교 교사, 1947년 진풍중학교 교사를 지냈다.
여 장로는 1943년 5월 장순덕과 결혼해서 長男 여경일 안수집사, 次女 여경숙 권사, 三女 여경자 권사, 四女 여경희 집사를 두었다. 장녀 여경화는 북한에 남겨두었고, 長男 여경일 안수집사와 子婦 한순자 권사는 현재 경기도 평택 미군기지에서 함께 근무하고 있다. 부인 장순덕 권사는 1981년 5월 29일(금) 권사 취임, 1996년 5월 8일(수) 은퇴하고 2005년 6월 26일(주일) 소천했다. 현재 여준국 장로는 동생 여준삼과 함께 차녀 여경숙 권사와 사위 정형규 안수 집사와 함께 여생을 보내고 있다. 처남 장세풍 장로(포병 중령)은 1950년 6.26한국전쟁 당시 의정부에서 탱크로 방어하다 순국했다.
여 장로는 1946년 1월 고향 내안교회에서 23세 집사로 섬기다가 6.25한국전쟁 시 1951년 1월 고향 앞바다 초도로 피난 LST로 남하해서 전북 군산시 구암동선교사 사택으로 피란해 군산제일교회 집사로 섬겼다. 그리고 군산역 근처 언덕에 학교를 건축했다. 학교는 당시 재학생이 180명가량이었는데 점차 학생들의 늘어났다. 그 학교에서는 5학년까지 가르쳤고, 6학년은 인근 지방 초등학교로 전학시켜 중고등학교로 진학하는데 지장 없도록 조치했다. 여 장로는 그 곳 초등학교를 설립하고 교사로 봉사했다. 그 후 서울로 이거 1978년 4월 20일(목) 서울강남노회 성림교회 장로로 장립을 받았다.
집안의 주요인물로는 동서 김덕모 목사는 평안남도 진남포시에서 교회를 섬기다가 1949년 신의주감옥에서 순교했다. 동서 이윤학 목사는 황해도 안악군 돌무지교회 시무하다 남하해서 제주도교회와 서울 남현동 삼육교육원 목사로 시무하다 소천했다. 동서 전인송 장로는 현재 목감에서 성림교회를 섬기다가 현재 요양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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