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맥아더의 <다른 불>(생명의말씀사, 2014. p96)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베니스의 상인』이라는 유명한 희곡에서 “번쩍이는 것이 모두 금은 아니다.”라는 표현을 만들어냈다. 그로부터 250년이 지난 1840년대, “캘리포니아 황금광 시대”에 모험적인 보물 사냥꾼들은 이 말의 진리를 몸으로 체득했다.
황금을 찾는 보물 사냥꾼들은 그리 오래지 않아 번쩍이는 것이 모두 채취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바위가 갈라진 틈이나 시냇물 바닥에 금가루처럼 반짝거리는 물질들이 보였지만 모두 황금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치 황금처럼 반짝거렸던 황철광 같은 흔한 광물질은 곧 “바보의 황금”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정신이 말짱한 채굴자라면 누구나 반짝거리는 물질과 진짜 금을 구별할 수 있어야 했다.
-존 맥아더의 <다른 불>(생명의말씀사, 2014. p160)-
성경은 물 없는 샘, 열매 없는 나무, 거친 물결, 유리하는 별들, 이성 없는 짐승,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개, 더러운 구덩이에서 뒹구는 돼지, 게걸스러운 늑대와 같은 표현을 사용해 거짓 선지자를 묘사한다.
-<예수가 말하고 싶었던 탕자 이야기>(위즈덤로드, 2010. p112-밑줄 친 부분만)
탕자는 분명히 자신이 탈선행위를 시작할 때 원했던 그런 종류의 삶을 발견하지 못했다. 먼 나라에서 빛났던 모든 것들은 황금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가 따라가려고 선택했던 그 길은 멸망으로 돌진하는 고속도로였음이 밝히 드러났다.
그가 추구한 자유분방한 삶의 양식은 끔찍하고도 완전히 망가진 노예 신세로 갑자기 전락하게 만들었다. 꿈은 모두 악몽으로 변하였다. 쾌락은 모조리 고통으로 바뀌었다. 즐거움은 전부 깊은 슬픔으로 빠져들게 하였다. 그리고 한순간의 방종으로 모든 것을 날려버린 이 부주의한 젊은 반항아는 철저한 자아박탈(self-deprivation)을 요구하는 삶의 양식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이제 환락은 끝났다. 호탕한 웃음소리는 고유한 침묵으로 바뀌었다. 풍악은 더 이상 울려 퍼지지 않았다. 그가 친구라고 불렀던 이들은 모두 떠나갔다. 이는 굉장히 좋지 않은 상황이었으며, 탕자는 거의 죽을 것만 같았다.
특히 "그리고 한순간의 방종으로 모든 것을 날려버린 이 부주의한 젊은 반항아는 철저한 자아박탈(self-deprivation)을 요구하는 삶의 양식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는 부분은 불만 또 불만스럽다. 영어식 표현이 분명하다.
-<이기는 정주영, 지지 않는 이병철>(무학, 2009. p185)
이병철에게는 평생에 걸친 일관된 특성이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마치 맹수와도 같이 들판으로 나가 먹이를 사냥하는 본성이 잠재되어 있었다. 작은 개미떼처럼 먹이를 차근차근 모으는 것이 아니라, 들판으로 나가 보다 큰 먹이를 일거에 포획하는 식인 것이다. 이병철은 어떤 사업을 하든지 처음 시작할 때부터 상당히 큰 규모로 출발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