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징기스칸-신통한 의술을 지닌 까레아 의사-이태준】
“CEO 칭키스칸-유목민에게 배우는 경영전략”은 김종래의 책이다. 저자 김종래는 한국일보 사회부, 정치부, 펀집부를 거쳐 조선일보 사회부 차장, 정치부 차장, 사회부장을 거쳤다. 2002년 11월 몽골 정부로부터 친선훈장을 받았고 몽골국립대학과 칭기스칸 아카데미에서 명예박사 학위(역사학)을 받았다. 2002년 6월에는 한국교육방송 EBS에서 ’칭기스칸에게서 배우는 CEO 경영전략‘과 21세기는 유목민의 시대’라는 주제 강연을 했다. 그의 저서 ‘유목민 이야기’는 단국대학교 몽골어과의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책 ‘CEO 칭기스칸’(삼성경제연구소, 2002년)에서 한국인 이태준을 소개했다(pp140-141).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의 국립공원에는 기념비 하나가 서 있다. 비석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한국인 이태준 선생이다. 한국인들도 잘 알지 못하는 그의 기념비가 왜 이곳에 서있을까. 사연은 참으로 기구하다. 그는 몽골의 마지막 칸이었던 ‘잡잔단바보그드칸’의 주치의로 일하며 독립운동을 벌이다 처형됐다.
1883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난 선생은 세브란스 의학교에 들어갔다. 재학 중, 고문 후유증으로 세브란스에 입원한 도산 안창호 선생을 치료하면서 조국의 비참한 현실을 깨닫는다. 1911년 졸업한 선생은 이드매 중국으로 망명, 남경의 ‘기독회 의원’이라는 병원에서 의술을 펼친다.
그는 사촌 처남 김규식 선생의 권유로 울란바토르로 건너가 항일단체를 도우며 ‘동의의국’이라는 병원을 열러 몽골인들의 질병을 치료한다. 김규식 선생은 몽골에 비밀 장교 양성소를 세울 계획이었다.
이태준 선생은 몽골인들에게 ‘신통한 의술을 지닌 까레아 의사(고려인 의사)’로 알려지면서 보그드 칸의 주치의가 됐다. 1919년에는 몽골 최고 훈장 ‘에르테닌오치르’를 받았다. 선생은 의열단에 가입해 독립운동 자금을 상해 임시정부에 전달하는가 하면 항일운동을 위한 무기를 만들려고 헝가리 출신 폭탄제조 기술자와 접촉하기도 했다. 그는 일본과 협력관계를 유지해 온 러시아 백군에 붙잡혀 38세(1921년)에 처형당했다.
“그 곳에서도 예수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