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관의 버킷리스트】 “21단 자전거로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기사입력 2020.11.17 17:03 댓글 0 2009년 2월 말. 개척한 교회 문을 닫았다. 교회를 잃은 목사는, 주일만 되면 동대문 벼룩시장을 전전하며 사람 많은 곳에 있으려고 애섰다. 상실감과 허전함으로 우울증에 빠져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고, 할 수 없었던 공항장애까지 얻었다. 3월 중순 대림동 자전거 shop에서 23만 원을 주고 21단 알톤 자전거를 샀다. 알톤 21단 생활 자전거다. 알톤 21단으로 날마다 정말 열심히 탔다. 4개월 한강에서 자전거 탔더니 111kg 몸무게가 96kg이 됐다. 한강에 나온 자전거를 보니 기가 막히다 못해 기가 죽었다. 왜 그렇게 비싸고 좋은 자전거들이 많은지. 이름도 알 수 없는 3.000만 원짜리 자전거를 한강 안양합수부에서 보았다. 분명히 비싸고 이름 있는 좋은 자전거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한강을 6개월 동안 다녔더니 단조롭고 답답했다. 변화가 필요했고 돌파구를 찾았다.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자전거로 무작정 남쪽으로 가기를 시행했다. 부산 방향으로 가는 길은 산세가 험해서 포기하고, 대신 넓은 들판으로 이어지는 목포를 택했다. 목포 가기 전에 처갓집, 함평도 있지 아니한가. 2009년 9월 14일 월요일 새벽 5시 드디어! 길을 나섰다. 그야말로 무작정 출발이었다. 아무도 가라고 하지 않은 길이었고 나 자신도 성공하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그 체력으로, 그 실력으로, 그 자전거로 불가능한 시도였다. 자전거 타이어 펑크 하나 해결하지 못하고, 1시간에 20km를 가지도 못하는 체력이 아닌가. 그러나 지금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었을 같다는 아내의 말이 나를 격동시켰다. 그래서 무작정 출발했다. 집을 나서 신도림역 아래 안양천 자전거 도로로 들어섰다. 오늘 목표는 온양아산까지다. 사실 서울에서 목포까지 가는 코스는 간단하다. 처음 가는, 어려운 길일수록 단순하게 생각해야 한다. 안양천 자전거 도로를 시작으로 39번 도로→21번 도로로 보령, 김제까지→23번 도로로 함평까지 갈 계획이다. 참고로 도로 표지판이 홀수이면 남북도로, 북남도로이다. 짝수이면 동서도로, 서동도로이다. 가는 길이 모두 홀수이면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이니 안심해도 된다. ‘푸른 들판 길’에 들판은 없고 첫날. 영등포 신길동 우신초등학교 사거리→안양천→구군포교까지는 자전거 전용도로라 잘 갔다. 이제 군포에서 국도로 나가야 달려야 한다. 막상 나가보니 발안 비봉으로 가는 길을 잃었다. 교통경찰이 39번 도로를 가르쳐 주었다. 쌍학교차로에 와서야 자동차 전용도로인 것을 알았다. 쌩쌩 달리는 자동차가 너무 위험해서 계속 자동차 전용도로로 갈 수 없었다. 매송 IC로 나와서 발안으로 가는 39번 국도를 찾아 갔더니, “오 마이 갓!” 험난한 고갯길, 고난의 길의 연속이었다. 수원시 예비군 훈련장을 지나『푸른들판길』에는 들판은 없고 고갯길의 연속이었다. 쉬고 또 쉬고, 끌고 또 끌고 앞으로 앞으로 갔습니다.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 사실 첫날. 이 길이 가장 힘들었다. 드디어! 발안 향남지구 주향남교회 앞에서 발을 잠시 멈췄다. 당초 계획은 여기서 하룻밤 지내고 갈 작정이었지만, 저녁이 되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래서 다시 출발! 화성시를 지나 평택으로 달렸다. 아산방조제를 지났지만 아직 아산시내까지는 30km가 남았다. 저질체력으로 고갯길마다 쉬어야 했다. 그러다 송담사거리에서 짧지 않은 깊은 잠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렇다고 탁 트인 아산방조제에서도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었다. 곧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간 주행은 아예 처음부터 포기했다. 어서 빨리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아산시내에 들어가야만 한다. 다행히 영인산휴양림을 지나 아산시 온양 시내에 들어가니 오후 6시다. 어둠이 급하게 내리면서 해를 가렸다. 얼른 『꿈의 궁전』모텔을 찾아 들어서서 땀에 젖은 옷가지를 세탁기에 맡기고는 저녁식사를 위해 근처 식당을 찾았다. 그리고 이것저것 정리하니 11시다. 곧 잠자리에 들었다. 최소한 8시간은 자야 내일 아침에 또 길을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첫날 12시간동안 90km를 달렸다. 1시간에 평균 7km다. 거의 자전거를 탄 것보다는 끌다가 쉬고 걸었던 하루였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면, 1시간에 평균 15km까지 달리게 된다. 평균 자동차로 1시간거리를 자전거는 하루가 걸렸다. ● 교회 문을 닫고 교통안전공단에서 실시하는 ‘택시운전자격시험을 보려고 집을 나서려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누군가 내 뒤를 잡았다. 그 자리에 멈추었더니, 한 음성이 들렸다. “지금 나서면, 다시는 교회로, 목사로 돌아올 수 없다! 그리고 몸을 돌려 집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6개월을 보내고서 경찰기독신문 기자 제의를 받고 1년 간 일하고, 2010년 장로신문 기자가 됐다. ● 교회를 정리하며 남은 돈 2,500만 원. 떠나는 교인들이 생활비로 쓰시든지, 아니면 다시 개척을 하시든지 목사님께서 재량껏 사용하라고 말했다. 10년 고생한 전도사 퇴직금 500만 원을 주었다. 6개월이 자날 무렵에 남은 돈은 520만 원. 갑자기 아내가 ACTS에서 석사과정을 밟겠다며 430만 원을 내놓으란다. 주고나면 100만 원 남짓 남는다. 아내에게 굶어죽게 생겼다고 하니, 아내는 하나님께서 안 주셔서 굶어죽으면 죽자고 한다. 한 달 뒤에 죽으나 3개월 후에 죽으나 죽는 것은 매 한가지라며 공부하겠다고 돈을 내놓으란다. 달라는 사람이나, 주는 놈이나...... 그런데 그때부터 기적이 일어난다. <저작권자ⓒ합동기독신문 & www.ikidok.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BEST 뉴스 위로 목록 댓글 작성을 위해 로그인 해주세요. 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