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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 하나님을 말하다

의심과 믿음 사이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기사입력 2017.10.04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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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과 믿음 사이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팀 켈러, 하나님을 말하다"

 
팀켈러, 하나님을 말하다.jpg
 
"팀 켈러, 하나님을 말하다"는 여러 해 동안 의심을 품은 이들과 나눈 수많은 대화에서 뽑아낸 진액이다. 이 시대는 종교적 믿음과 회의주의 둘 다 성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의심과 믿음 사이에서 씨름하는 이들에게 책 "팀 켈러, 하나님을 말하다"(두란노, 2017)는 비신앙인들은 자신들의 의심을 의심해야 하고, 신앙인들도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을 그대로 믿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왜냐하면 의심을 내포하고 있지 않은 신앙은 항체를 갖추지 못한 몸과 같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의심까지 포용하셨다(9:24). 그러므로 의심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제안한다.


(Part1에서) 이 시대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이유들, 하나님을 오해하는 일곱 가지 질문에 답했다. 1) 배타성-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이 말은 "참다운 신앙은 하나뿐이라는 게 말이 되나요? 자기 신앙이 우월하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종교인들을 모두 그쪽으로 개종시키려 하다니, 오만해도 오만한 노릇이에요. 종교는 다 선하고 그 도를 좇는 이들의 필요를 효과적으로 채우는 법이 아니던가요"로 회자된다. 그리고 "어떻게 가던 서울만 가면 되지 않나요?"는 말로 정리한다. 이에 팀 켈러는, 모든 종교를 똑같은 사고방식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는 주장은 어느 특정한 신앙이 올바르다는 쪽보다 더 편협하다. 믿음에 관해서는 어느 주장이든 배타적이다. 다만 그 길이 서로 다를 뿐이다. 그런데도 기독교의 배타적인 확신체계가 다른 이들에게 그토록 개방적인 행동을 하게 만드는 이유는, 크리스천들은 신앙체계 속에서 헌신적으로 섬기고 너그럽게 베풀며 화해를 이룰 더없이 강력한 자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2) 악과 고통-하나님이 선하다면 왜 세상에 고통을 허락하시는가? 악과 고통은 하나님께 맞서는 증거가 될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는 증거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을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소리도, 인간의 처지에 냉담하며 멀리 떨어져 지켜볼 뿐이라는 주장도 답이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는 인간의 비참한 현실과 고통에 뛰어들어 그 짐을 대신 지셨기 때문이다.

3) 속박-기독교는 인간의 자유를 옥죄는 오랏줄인가? 즉 절대 진리를 주장하는 믿음은 자유의 적인가?란 물음이다. 이에 대해 팀 켈러는, 진리는 피할 수 없고, 자유는 단순하지 않다. 기독교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게 아니라 특정한 신념들을 받아들인 공동체이다. 어떤 공동체도 완전히 포용적일 수 없다. 그렇다고 기독교 신앙이 문화적으로 경직되어 있지도 않다. 사랑, 그 궁극적인 자유조차도 생각보다 구속적이라고 바로 핵심을 찔렀다.

4) 기독교의 불의-교회에 다니는데 왜 불의한가? 교회는 성자들을 늘어놓은 박물관이 아니라 죄인들을 치료하는 병원이다. 성품이 성숙해지고 행동이 변하는 것은 크리스천이 된 뒤에 차츰차츰 일어나는 과정이다. 이는 정서적으로, 윤리적으로, 영적으로 아직 갈 길이 먼 미숙하고 연약한 인간들이 교회에 가득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5) 심판-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을 지옥으로 보내실 수 있는가? "피를 뿌려서 진노를 달래야 하는 심판자 하나님의 존재에 회의가 들어요. 심판하는 하나님은 설 곳이 없다. 심판하는 하나님이 곧 사랑의 하나님이 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라면 인간을 지옥으로 보낼 리가 없다"는 질문이다. 그러나 팀 켈러는, 누구나 용납하고 아무도 심판하지 않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뿐인 하나님을 믿는 그 강력한 신앙행위를 뒷받침할 자료는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고 답한다.

6) 과학과 기독교-과학이 기독교 신앙이 틀렸음을 증명해 낸 것이 아닌가? 진화론을 따르는 과학도로서는 생명의 기원에 대한 기독교의 설명, 과학과는 거리가 먼 그 이야기를 도무지 인정할 수 없다. 게다가 성경은 온통 기적 얘기다"는 말에 "기적은 믿기 어려우며 그게 당연하다. 살아나신 예수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손으로 만지면서도 부활의 기적을 믿지 못했다. 현대인들은 기적을 자연 질서의 '일시정지'로 여기지만 예수는 자연 질서를 '회복하는 도구'로 삼으셨다. 주님은 악한 세상을 대속하고 깨지고 상한 상처를 치유하러 오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은 인간 정신 앞에 놓인 장애물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에 주는 언질, 온 인류가 고대하는 세상이 오고 있다는 약속이다"라고 답했다.

7) 성경-성경의 기적을 어떻게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는가? "성경의 가르침 가운데 상당 부분은 역사적으로 부정확하더군요. 성경에 나오는 이러저런 일들이 정말 일어났는지 의심스럽다러워요"라는 의문에 "복음서의 문학형식은 너무나 섬세해서 전설이 될 수 없다. 성경에서 감정을 상하게 하고 뜻에 맞지 않는 부분을 닥치는 대로 도려내고 믿고 싶은 내용만 골라서 믿고 나저는 거부한다면, 인간과 다른 생각을 가진 하나님을 어떻게 만나겠는가? 어림도 없다"고 답한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1:18) 회의에서 믿음으로의 여정 사이를 다룬 '인터미션'에서 "하나님은 실증적인 탐색능력을 가지고 수동적인 대상을 찾아내듯 발견할 수 있는 분이 아니다. 도리어 인간 자신을 포함해 온 우주에 적힌 거룩한 실체의 단서를 찾아야 한다. 이는 마치 해가 떴다고 믿는 것은 단순히 눈으로 해를 보기 때문이 아니라 해가 비추는 세상 만물들을 보는 것처럼"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Part2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확실한 근거들을 밝혔다. 이 책으로 의심과 믿음 특히 자신이 완전한 믿음에 서 있다고 확신하는 젊은이들을 더욱 더 확신시켜라. 1) 하나님의 존재를 암시하는 실마리들-만물에는 하나님의 실존을 가리키는 신의 지문이 묻어 있다. 2) 하나님을 아는 지식-누구나 이미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3) 죄 된 본성-마음의 빈 공간이 하나님이 아니면 죄로 채워진다. 4) 종교와 복음-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복음이다. 5) 십자가-가장 확실한 증거가 예수다. 6) 부활이 던지는 도전-예수님의 부활은 완벽한 검증을 거친 역사적 사실이다. 7) 영원한 삶-우리를 위해 준비된 돌아갈 곳이 있다. 에필로그-이제 하나님을 믿을 준비가 되었는가?

그렇다고 하나님을 찾지 말라. 주님은 잃어버린 양을 두루 찾아다니시는 하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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