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최재호 목사의 성경적 세계관은 “성경에 의해서 형성되고, 점검된 세상을 보고, 듣고, 생각하는 틀” 타락한 세상에서 받은 나의 상처를 재해석하라. 이 상처를 통해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발견해야 한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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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호 목사의 성경적 세계관은 “성경에 의해서 형성되고, 점검된 세상을 보고, 듣고, 생각하는 틀” 타락한 세상에서 받은 나의 상처를 재해석하라. 이 상처를 통해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발견해야 한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기사입력 2024.06.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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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여, 일어나라! 교역자여, 일어나라!” 예장합동 총회교육부(부장 하재호 목사)가 주최한 제55회 전국교역자하기수양회가 전국에서 120여 명의 교역자 부부가 참석한 가운데 610일부터 14일까지 필리핀 보홀, Panglao Island 비그랜드 리조트에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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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저녁 세미나는 부장 하재호 목사의 인도로 제주 열린문교회 이수덕 목사의 기도 그리고 성일교회 최재호 목사가 성경적 세계관 보고 듣고 생각하는 틀을 강의했다. 그리고 부장 하재호 목사의 인도로 다같이 합심기도했다. 모든 순서는 청주한소망교회 김창권 목사의 축도로 마쳤다.

 

다음은 강의 내용이다.

 

I. 세계관의 정의

 

성경적세계관은 개혁교회의 신앙과 신학의 유산이다. 어떻게 하면 성경적세계관, 기독교세계관을 성도들의 눈높이에 맞출 수 있을까? 개념정리가 우선이다.

 

A. 세계관은 사물을 보고, 듣고, 생각하는 틀이다.

 

B. 성경적 세계관은 성경에 의해서 형성되고, 점검된 세상을 보고, 듣고, 생각하는 틀이다. 우리의 모든 인식은 세계관 틀이다. 세계관의 진공상태에서 일어나는 생각, 행동하는 것은 없다.

 

산에서 도토리를 본 할아버지는 도토리묵을 생각하고, 손자는 다람쥐를 생각한다. 이는 세계관의 틀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사건을 취급하는 조선일보 사설과 한겨례신문 사설이 다른 것도 세계관의 틀이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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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

 

A. 성경적 세계관의 첫 번째 원리 : 하나님의 주권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1:1) 

모든 사물과 사람의 주어가 하나님이다. 주객이 전도되면 안 된다. 하나님이 주인이고 모든 사람과 사물은 목적이다.

 

B. 성경적 세계관의 두 번째 원리: 인간의 청지기적 사명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제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1:26~28)

 

즉 하나님의 형상, 모양으로 창조되었기에 하나님을 본받아야 한다. 원본이신 하나님과 소통하고 원본을 닮아야 한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로 창조, 공동체로 창조하셨으니 공동체를 세워야 한다. 그리고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청지기적 사명이다.

 

C. 성경적 세계관의 세 번째 원리 :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1:31)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이다. 이는 우리의 삶의 목적이고 완성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것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인가? 이에 응답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다. 하나님이 주인이기 때문이다. 창세기는 청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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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 창조 질서의 타락 : 문제가 생기다. 즉 창1:1절을 뒤집는, 3:5절이다.

 

A. 타락의 원리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저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하나님이 아심이니라”(3:5)

 

선악을 안다? 하나님이 주인이 아닌 아담과 하와가 주인이 될 수 있다? 사탄이 유혹하다. 그러나 내 뜻대로 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이 개혁신학, 개혁신앙이다.

 

B. 타락의 결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3:15)

 

타락의 결과는, 모든 관계가 아름다운 관계에서 투쟁적 경쟁 관계로 변하는 전쟁터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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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타락한 삶의 모습-야곱의 가정을 모델로 제시하다.

 

야곱과 에서의 관계, 야곱과 이삭의 관계는 전부 투쟁적 전쟁 관계이다. 야곱의 아내들도 투쟁적이고 경쟁관계이다. 야곱의 12아들도 전부 너 죽고 나는 살자는 투쟁적 전쟁 관계이다. 그 가운데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야곱의 인생에도 행복이 없다. 그 야곱 속에서 나의 모습이 보지 않는가? 모두가 상처받은 피해자이다. 야곱은 야곱대로, 라헬은 라헬대로, 리브가는 리브가대로 상처받고 고통한다. 하나님은 야곱과 야곱의 가정을 통해 상처받고 고통받는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 발견으로 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 셋째, 회복을 위한 반전

 

A. 야곱의 고백 :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고백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43:14)

 

야곱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내가로 살았다. 그러나 이 순간부터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라고 고백하다. 이때가 창1:1절이 회복하다. 그러므로 내가, 내가, 내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이때부터 하나님의 주권이 회복되다. 이때부터 야곱은 기쁨을 회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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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요셉의 고백 : 상처의 재해석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유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팔았다고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43:14)

 

전쟁터인 야곱의 가정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요셉이다. 요셉이 원수를 갚고자 원망 불평이 아놔야 하는데, 용서, 사랑, 포용했다. 요셉이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알았다. 하나님이 요셉을 애굽에 보냈다고 고백한다. 요셉은 그 아픔을 재해석한다. 요셉은 통치자의 꿈을 꾸었는데,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요셉의 길을 형통하다고 하셨다. 생명을 살리려는 하나님의 뜻이었다. 요셉은 자신의 상처를,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일이라고 재해석했다. 요셉은 자신에게 상처를 주신 하나님의 뜻을 믿고 알았다. 상처는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재해석될 때 치유된다.

 

C. 요셉의 고백 : 청지기적 사명의 회복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50:19-21)

 

요셉의 사명 회복, 사명 선언이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즉 창1:1절이 회복되다. 형들을 살리려고 야곱에게 총리를 주셨다. 요셉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시행하며 형들을 살린다. 이는 요셉이 사명 선언이다. 그러므로 사명자는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로 살아야 한다. 그때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므로 요셉은 구약의, 창세기의 예수 그리스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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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요셉을 보면, 성경적 세계관의 실천이 보인다.

 

A. 첫째, 타락한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재해석하라.

타락한 세상에서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이 상처를 통해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발견해야 한다.

 

B. 둘째, 하나님이 부르신 청지기적 사명에 충성하라.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내 뜻대로 하면 안 된다. 시키는대로 해야 한다. 요셉은 아버지의 집에서, 보디발의 집에서도, 감옥에서도, 왕궁에서도 왕의 충성스러운 심부름꾼이었다. 요셉은 단 한 번도 일인자가 된 적이 없다. 요셉은 끝까지 청지기였다. 요셉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하는 청지기적 사명을 회복한, 하나님의 총리였다.

 

C. 셋째,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기쁨에 참여하라.

우리 인생은 결과가 아니라 상태이다. 쫓고 쫓기던 야곱은 거부가 되어도 불안했다. 야곱은 결국 애굽에 내려와서 평안을 누렸다. 하나님 앞에서 불안하다면 그 인생은 실패이다. 우리 인생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것이다. 내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하나님의 보시기에 심히 좋은 가정, 교회, 국가를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완성이다. 이것이 성경적세계관의 실천이다. 내 주인의 영원한 즐거움에 참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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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수양회 첫날 총회선거관리위원 한기영 목사, 유병희 목사, 김상원 목사, 전응구 목사가 나와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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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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