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2회 총회 “자살은 지옥으로 인도하는 근거가 되지 않는다”는 그 위험성
자살에 대한 신학적 정리는 될 순 있어도 목회적 돌봄은 미흡하다
제101회 총회는 “동대구노회장 송기섭 씨가 헌의한 교회 안에서의 자살자 구원 관련 입장 표명의 건”을 “신학부로 보내 연구하여 보고하라”고 결의했다. 이에 총회 신학부는 1년 간 연구하여 제102회 총회에 내놓았고, 제102회 총회는 신학부의 주장을 채택했다.
총회 신학부는 “자살한 신자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주장은 개혁주의 구원론의 근간을 허물어뜨리는 위험한 주장이다. 개혁주의 구원론의 아홉 단계의 구원의 서정들 가운데 몇 가지만 그 특징들을 짙어보면 이 사실이 명확해 진다. 신자의 구원은 중생, 칭의, 양자됨, 견인에 근거한다. 중생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한 인간을 살려내는 성령의 사역으로서 신자의 구원은 중생에 의하여 영구적으로 결정된다. 중생에는 인간이 행한 어떤 도덕적인 공로도 근거로서 작용하지 않으며, 중생 사역 그 자체에는 심지어 말씀조차도 관여하지 않으며, 한 번 중생이 이루어지면 취소되는 일이 없다. 중생과 동시에 일어나는 칭의에서도 인간의 어떤 의로운 업적도 근거가 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의만이 근거가 되며, 칭의 시에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책이 단번에, 완전히, 영구히 제거된다. 중생과 칭의와 동시에 이루어지는 양자됨에도 인간의 혈통상의 조건이나 양자의 삶의 모습이나 업적이 전혀 개입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중생하고 의롭다함을 받은 하나님의 양자된 신자가 현재에서의 삶을 사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붙들어 주신다. 신자들은 현세 안에서 사는 동안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백성의 신분에 부합하는 삶을 살도록 엄중한 규범적 명령 하에 들어간다. 그러나 재림 시 회개와 성화의 열매는 천국행이 결정된 신자에 대한 책망과 상급을 위한 하나님의 심판대상은 되지만 천국행과 지옥행을 결정하는 궁극적인 구원의 조건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개혁주의 구원론의 틀에서 볼 때 신자의 자살이 신자를 지옥행으로 인도하는 근거가 된다고 주장할 수 없다”이다. 한 마디로 “비록 자살이라도, 한 번 중생은 취소되지 않는다”고 내놓았다. 즉 구원이 인간의 그 어떤 행위와 공로가 근거가 될 수 없듯이, 비록 신자가 자살이라는 행위라도 천국행이 보장된 신자가 지옥행으로 인도되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지금까지 교회는 “자살하면 지옥 간다”고 가르치고 또 지켜왔다. 그런데 최근 국민개인소득 2만 불 시대를 넘어서면서 대한민국 자살률은 OECD국가 중에 1위를 차지했다. 그 중에서 많은 신자들이 자살하자, 교회는 크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자살해도 지옥에 가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결국 제102회 총회는 “자살은 지옥으로 인도하는 근거가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냈다. 비록 신학부가 내놓은 “자살한 신자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주장은 개혁주의 구원론의 근간을 허물어뜨리는 위험한 주장이다”가 신학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130년 한국교회가 가르쳐온 “자살하면 지옥 간다”는, 그 믿음을 가진 많은 신자들에게 그 어떤 제대로 된 설명하나 없이 한순간에 “자살해도 지옥에 가지 않는다”고 충격만을 안겨주었다.
지금도 많은 신자들이 자살을 고민하면서 상담실 문을 두드린다. 그런데 이들 내담자들 중에는 자살하고 싶어도 자살할 수 없는 이유는 “자살하면 지옥에 가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기독교 전문 상담사들은, 자살을 계획하는 이들에게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고 마지막 생명줄을 붙잡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자살은 지옥으로 인도하는 근거가 되지 않는다”고 하면 많은 신자들이 너무나 쉽게 그 생명줄을 스스로 놓을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자살은 지옥으로 인도하는 근거가 되지 않는다”는 신학적 결론이 비록 신학적인 정리는 될 수 있을 줄 모르지만, 목회적 차원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대안방안이 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