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불의한 포도원 농부들에게 고함(눅20:1-18)
총신대학교의 불의한 농부들에게 고한다. 그대들은 한 때 신실한 포도원 농부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대들의 손에 든 칼끝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포도원에서 포도나무를 다듬던 그 칼을 왜 주인에게로 향하는가? 왜 주인의 종들을 죽였는가?
그대들은 주인의 포도원 농부들이다. 주인이 멀리 있다고 해서, 포도원이 다른 지역의 있어 다른 법을 지킨다고 해도, 또 오래 동안 포도원을 맡았다고 해서 그 포도원이 그대들의 것이 될 수는 없다. 포도원의 주인이 달라질 수는 없다. 그대들은 단지, 단지 그 포도원의 농부일 뿐이다. 그런데 주인이 보낸 종을 막아서고 죽여서야 되겠는가? 그런데 벌써 주인의 종 세 명을 거부하고 죽였다. 그것도 주인의 말에 순종한 순진한 종들을 말이다.
좌충우돌 마초 안명환 목사는 그대들이 생각하기에도 위험했으리라. 그러나 좌충우돌한 결과, 총신대학교와 총신의 역사에서도 그 존재의미가 퇴색해져버렸다.
순진한 백남선 목사는 ‘공증합의서’만 믿었지만, 총신대학교를 지키려고 몸부림 친 것에 만족해야 했다.
더 순진한 마초 김승동 목사는 ‘이사장 대행’에서 그만 그대들이 휘두른 배신의 칼에 큰 상처를 입고 백의종군을 다짐했다.
이제 주인이 보내는 마지막 아들, 운영이사회를 보냈다. 그러나 그대들은 그 아들을 포도원 밖으로 끌어내고 짓밟았다. 그대들 스스로 사학법의 자식들이 되어, 주인의 아들을 죽이는구나. 전에 주인의 풍성한 포도원이었던 총신대학교가 어찌하여 그대들로 인해 창기와 같이 더러워졌으며, 살인 터가 되었는고.
이제 “건축자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도다”(눅20:17)란 말씀이 그대들에게 실현되어야겠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눅20:16)라고 말하는 자들이 있다. 아직도 “어디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쓸데없는 소리 마시오”라며 불필요한 동정론을 펴는 자들이 있다. 아직도 성경과 헌법 그리고 총회 결의를 따르지 않고 사학법에 기대어서 총신대학교를 유린하는 자들에게는 방임하고 침묵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균형을 잃은 무모하고 무책임한 도덕론은 어디서 온 것이란 말인가.
그러므로 경고하노니, 그대들이 총신대학교란 돌 위에 떨어지겠고 반드시 깨어지게 될 것이다. 아니면 돌이 그대들에게 떨어져서 가루로 만들어 흩어지게 할 것이다(눅20:18).
그대들이 주인의 포도원에서, 주인의 포도나무를 돌보면 그 포도원에서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클 것이다. 그러나 주인의 포도나무를 돌보던 그 손, 그 칼로 주인을 헤아려 든다면 그 포도원에서는 웃음소리가 아닌 비명소리와 함성소리로 가득할 것이다. 부디, 사학법의 칼로 주인을 향하지 말고, 총회 헌법의 칼로 포도나무를 지켜주기를 바란다. 이제 칼끝을 돌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