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만나다】 신촌교회 안영칠 장로
안영칠, 신동재에서 신촌교회가 되다-3
사진 좌측부터 정정용 목사, 백순남 권사, 안영칠 장로와 마을이장 홍완근 장로이다.
마음의 상처를 가진 이들이 남겨진 신동재에서 영혼의 안식처 신촌(新村)교회가 되다. 안영칠은 1984년 4월 장립집사가 되고 10년 후 1994년 4월 장로 장립을 받는다. 2016년 4월 한국한성장로회 회장이 된다. 부인 백순남은 2002년 6월 권사가 된다.
신촌교회는 1948년 대구 대명동에서 시작하고 1949년 10월 신동재에 들어서서는 애생교회가 된다. 1961년 7월 지금의 신촌교회란 이름을 가지고 2018년 설립 70년을 맞이한다. 지금까지 13명의 담임목사가 신촌교회를 시무했다. 그러나 때로는1년-5년, 길게는 16년을 섬긴다. 가장 길게 교회를 섬긴 이는 김치은 목사(16년), 한유도 목사(10년) 그리고 현재 담임목사 정정용 목사가 10년째다. 1-5년이라는 짧게 그리고 잦게 담임목사가 바뀌는 동안에 교인들은 마음의 상처가 남을 수 있었겠지만 신동재에 남겨진 안영칠과 다른 이들은 더 악착같이 신촌교회로 세워진다.
정정용 목사는 “안영칠 장로는 성실하다. 진짜로 교인들을 사랑하고 교회에 헌신하는 분이다. 안연칠 장로께서 장로 장립을 받은 지 17년 만에 수석장로가 됐다. 그때부터 우리 당회가 웃으면서 살아왔다“면서 “안 장로는 차분하게 교회 정리를 잘하고 질서와 행정을 잘 잡아나갔기에 신촌교회가 든든하다. 그래서 은퇴를 한 해 늦추어도 되는데 굳이 2017년에 은퇴해야 된다고 하셔서 지난 10월 28일(토) 은퇴식을 거행했다. 안 장로는 장로장립 받은 후 지금까지 365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대구 시내에서 신촌교회까지 신동재를 넘어 새벽기도에 참석한다”고 칭찬했다.
그러자 안영칠 장로는 “우리 정정용 목사께서는 인자하고 서민적이다. 교회 작업하거나 청소를 할 때 보면, 우리들 보다 더 열심히 땀 흘리고 일하신다. 완전히 이웃집 아저씨 같이 다가오신다“면서 “당회에서도 장로들의 요구가 있으면 언제든지 쾌히 승낙하신다. 지난 10년 동안에 당회에서 큰 소리 한 번 난적이 없고 대신 크게 웃으며 보냈다. 당회원 한 사람이라도 무엇을 하자고 하면, 모두가 동의하는 은혜를 유지해 왔다”고 말했다.
특히 안 장로는 수석장로로서 당회원과 담임목사와의 인간의 기본인 친목도모에 애써왔다. 24년 시무장로, 6년 수석장로로 신촌교회를 섬기면서 큰 대과없이 보냈다고 말할 때, 그의 눈에 작은 눈망울이 맺혔다.
그러면서 안영칠 장로는 “어느 교회든지 장로가 목사의 설교를 판단할 때도 있다. 저도 예외가 아니다. 그럴 때 정정용 목사는 “예, 수정하겠습니다”라고 수용하시는 태도에 감동한다. 장로의 판단이 틀렸다는 곳을 목사는 알지만, 변명하거나 설명하지 않으시고 수용하시는 모습에 장로가 감탄한다”고 말했다.
안영칠 장로는 생각도 행동도 쉬는 법이 없다. 2007년 (사)한국한센인총연합회 경북지부장을 맡고서는 교인들과 주민들을 위해 무엇을 할께 구상 중에, 교통과 몸이 불편해서 나들이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신동재 주민들에게 경로잔치를 일구어낸다. 경로잔치는 도청의 도움을 받아 마을별로 연다. 2007년만 해도 마을주민 약1050명을 대상으로 잔치를 열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약750명이 경로잔치에 참석한다.
안영칠 장로와 같이 한센인 1세대의 주사업은 축산업이다. 그 사업은 대부분 한센인 2세가 맡아 이어오고 있는데, 안 장로는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까를 고민하다 마침내 도청의 문을 두들겨서 경북정착마을 축산가정에 약품구입 예산을 타낸다. 처음 1억 5천 만 원에서 2017년 2억 2천 여 만원을 예산 지원을 받아낸다.
안영칠 장로 “전국 8개 한센인 정착마을에 ‘경로잔치‘와 ‘약품구입 예산‘을 지원받고 있다. 이를 가장 보람으로 여기고 그 과정, 과정 하나가 하나님의 은혜와 손길이 있었기에 큰 즐거움이 됐다”고 자랑했다.
마음의 상처를 지닌 이들의 안식처, 경북 칠곡 신동재 신촌교회 안영칠 장로는 그 아픔과 고된 시간을 이겨내며 신앙과 생활에서 FM이 됐다. 그러므로 안영칠 장로는 한 번 말하면 반드시 지키고 모든 일에 앞장서는 리더자이며 없는 일도 만들어내는 건축가이다. 그렇게 안영칠은 1951년 6.25한국전쟁이 한창인 그때, 14세 초등학생의 몸에 일어난 엄청난 질고를 이겨내고 마침내 신동재 위에 우뚝 섰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한 교회의 장로로 무엇보다도 안영칠은 이 땅의 주님의 몸 된 거룩한 교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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