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 정서는 사람의 마음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감정, 지역이나 집단과 관련한 한정적 특성과 성향이다. 영어는 emotion, sentiment, affective, attitude, psyche을 사용한다. 한마디로 정서는 마음흐름이다.
정서적으로 대구와 경북을 하나도 묶을 때 대구경북이다. 가나다순으로만 해도 경북대구인데, 언제나 대구경북을 사용한다. 대구의 모체는 경북인데 왜 대구경북이라 할까? 정서 때문이다. 아마도 힘의 정서 또는 정치 지도력 때문이 아닐까. 비록 대구가 경북을 모태로 태어났지만, 경북 속의 대구가 아닌 경북 위에 우뚝 선 대구라는 자부심, 그 힘의 정서가 작동했을 것이다. 그래서 대구의 정서가 부산이나 경남으로 매끄럽게 연결되거나 소통되지 않는다. 간간히 ‘영남-우리가 남이가’라는 한 우산 속으로 모으려고 하지만, 영역이 넓어질수록 그 응집력은 약해진다. 대구의 정서가 경북과 연결된 것과 달리 광주의 정서는 전남으로 흐른다. 그래서 광주전남이다. 광주와 전북이 하나 되는 정서는 생각도 못한다. 마찬가지로 ‘호남’으로 힘을 합쳐보지만 지역이 넓을수록 그 결집력은 떨어진다.
경남 속에 부산과 울산이 있다. 그러나 부산이 울산과 경남을 이끌고 있기에 ‘부산울산경남‘순이다. 2010년 창원, 마산 그리고 진해가 하나로 뭉쳐 인구 100만 명의 창원시가 되어 경남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광역시를 시도하지만 아직도 ‘안 된다.’는 지역 정서에 묶여 있다.
통일과 평화. 6.25한국전쟁 이후 북한은 적화통일, 남한은 흡수통일 그리고 기독교는 복음통일을 염원해 왔다. 그러나 단 한 순간도 남과 북, 북과 남이 통일을 원했지만 평화적인 삶은 생각도 못했다. 한반도는 지난 70년 동안 ‘통일‘만 노래했지 ‘평화’를 꿈꾸지 않았다. 남과 북의 지도자들이 4월 27일(금) 정상회담을 했다. 마지막 백두산 혈통 김정은과 부산 갈매기 문재인이 만나 평화를 논하기 시작했다. 평화는 제일 먼저 크고 작은 무기를 버리는 것부터 시작한다.
보수는 반드시 개혁과 함께 있어야 썩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개혁주의 보수신앙이 아니던가. 그러나 지금 한국교회와 대한민국 보수가 갈 곳을 잃은 것은 보수만 했지 개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학자 사도 바울만 있지 선교사 사도 바울은 없다. 대신 유약한 디모데를 강대상에 올려놓고 교회 관리자로 눌러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