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통합당 김종인 대표는 1940년생, 80세다. 그런 그에게 미래통합당의 미래와 대한민국 보수 진영의 생사가 맡겨졌다. 그런데 그가 미래통합당의 대표격인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으면서 꺼낸 말이 “보수란 말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였다. 즉 보수와 진보 프레임을 벗어나야 미래통합당은 물론 대한민국 보수가 그나마 생존할 수 있다고 보았다. 번번이 깨지는 보수와 무엇을 해도 이기는 진보 프레임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더 이상 보수가 보수만을 표방해서는 안 된다는 시대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의 말에 54세 미래통합당 장제원 의원은 “하늘이 두 쪽 나도 미래통합당은 보수 표방 정당이다”라고 응수했다. 그동안 장제원 의원은 그나마 미래통합당 의원 중에서 개혁적인 의견으로 보수로부터 지탄 또는 지지를 많이 받은 사람이었다. 지탄은 장제원 의원의 의견이 너무 진보적이란 데서 온 말이다. 지지는 보수의 마음을 가장 시원하게 아우른다는 평가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대한민국과 한국교회 보수가 ‘그래도 우리는 보수이다’라는 미래통합당 장제원 의원의 말보다는 ‘보수란 말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미래통합당 김종인 위원장의 말에 귀를 더 기울이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아마 ‘보수’를 버리고 ‘보수’가 취할 사상적 함축적인 미래 비전의 구호가 무엇일까? 하는 기대감일 것이다. 그래야 번번이 이기는 진보 콤플렉스를 극복할 ‘보수’의 정체성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많은 보수들도 이미 장제원 의원의 주장과 생각을 뛰어넘었다. 때문에 67년생 장제원 의원도 이미 ‘꼴통 보수’의 길로 접어든 것이 아닐까? 염려한다. 그러므로 이제 ‘보수’를 버리려고 하는 김종인 위원장이 제시하는 ‘보수’를 대신할 미래지향적인 비전 제시를 기대한다.
이미 그 길을 제시하고, 또 그 길을 가고 있는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진중권 교수이다. 그는 진보냐, 보수냐는 틀에 갇히지도 함몰되지도 않았다. 진 교수의 화살은 그동안 보수 진영을 향했다. 그런데 ‘조국 사태’ 이후로 그의 독화살은 자신의 진영, 진보를 향해 쏘아대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는 대다수 보수들은 속이 시원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어느 보수도, 자기 진영을 향해 거침없이 독한 화살을 쏘아댄 용기 있는 논객이 없었기에 진보의 아이콘이었던 진중권 교수가 보수의 아이콘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아니, 진중권 교수가 보수의 아이콘으로 변신하는 것이 아니라, 보수가 나가야할 길을 미리 걷고 있다고 여겨진다. 진중권 교수의 부친은 목사였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적지 않다.
지금 대한민국과 한국교회는 진보와 보수의 양극화된 정치 상황이다. 그런 형편에서 진중권 교수의 진보 찌르기는, 그가 속한 진영보다, 그 진영이 추구하는 이데올로기보다, ‘나의 양심’을 맨 앞자리에 놓았기에 가능했다. 장로교 정치원리 중에서 제1원리인 ‘양심의 자유’가 생각나는 부분이다.
장로교정치원리는 모두 8원리가 있다. 맨 처음에 양심의 자유가 있고, 그 다음이 교회의 자유이다. 종교개혁은 양심의 자유의 발로이다. 즉 교회의 자유(당시는 교회의 억압이었다)에서부터 양심의 자유를 내세우며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그런데 대한민국 특히 한국교회에서 양심의 자유는 철저하게 배격되고 있다. 교회를 자유를 앞세운 일부 목사와 교권주의자들로부터 철저하게 양심의 자유가 짓밟히고 있다.
종교개혁의 아이콘은 보수가 아닌 개혁이다. 그래서 우리가 찾아낸 시대 언어가 개혁보수이다. 한국교회가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가 하면, 계속 개혁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계속 개혁해 나가야 할 교회가 점점 실용화되고 있어서 또 다른 변절로 나가고 있다.
보수는 진보가 될 수 없다. 아무리 김종인 위원장이 보수를 버리고 싶어도 진보로 설 수 없다. 그렇다면 대한민국과 한국교회의 아이콘은 종교개혁의 절실했던 구호인 ‘개혁’이다. 왜냐하면 혁명은 진보에 어울린다. 개혁은 진보에 맞는 옷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청와대와 민주당의 발걸음은 가히 혁명적인 이유이다. 보수에게 어울리는 옷은 개혁이다. 그러나 혁명과 달리 개혁은 발걸음이 느리다. 그러므로 문제는 속도이며 선제공격이다. 지금 미래통합당 김종인 위원장의 선제공격이 나섰다. 한국교회와 우리 교단도 선제공격에 화력을 집중해야 한다. 더 이상 교권다툼과 자리싸움에 연연할 시간이 없다.
<최성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