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깨우는 큰 종소리, 광교제일교회 이종석(李鐘碩) 목사 ③ 세 번째 부르심 : 다음 주부터 우리 교회로 오세요! 기사입력 2020.10.10 21:57 댓글 0 세상을 깨우는 큰 종소리, 광교제일교회 이종석(李鐘碩) 목사 ③ 광교제일교회 이종석 목사는 세 번째 부르심에 순응해 지금의 교회를 일구어냈다. 또 한 번의 속삭임에 순종하여 지금의 가정을 이루어냈다. 이 목사는 영적민감성으로 외부의 시그널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응답했다. 세 번째 부르심 ① : 다음 주부터 우리 교회로 오세요! 이력서 내고 면접본 적이 없어요 대한신학교와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에 입학해서 87년 2월에 졸업했어요. 그때부터 교육전도사를 시작했는데, 이력서 내고 면접본 적이 없어요. 3월에 대한신학교를 입학하고 4월 쯤, 주일 저를 찾는 전화 한통이 행당중앙교회로 왔어요. 지금은 고인이 되신 천호교회 노의일 목사님이 저를 찾았어요. 깜짝 놀랐죠. 저도 목사님도 서로 잘 몰랐어요. '이 선생. 우리 교회로 오시오. 이제 신학교에 갔으니 우리 교회에서 주일학교 애들 맡아줘' 하는 거예요. '목사님 저는 지금 이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하고 있어요. 제가 무슨 교육 전도사를 하겠어요'라고 했더니, '빨리 와! 다음 주부터 우리 교회로 오세요!'하고 전화를 딱 끊어버리는 거요. 누가 천호교회에다 제 얘기를 한 것 같아요. 제가 행당중앙교회 주일학교 교사하면서 열심히 했거든요. 제가 다섯 명 정도를 맡으면 6개월만 지나면 30명, 50명으로 우리반 애들이 많아졌어요. 그 이야기를 노의일 목사님께 이야기 한 거예요. 저도 생각하기를, 이제 신학교에 갔으니, 교사 하는 것보다는 교육전도사 하는 것이 더 좋겠다고. ‘아이들만 잔뜩 모으면 어떻게 하냐?’ 77년 4월 말에 천호교회에 갔더니, 주일학교 학생 150명을 맡기더라고요. 특별히 한 것도 없었어요. 교사들과 함께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했더니 150명이 200명, 300명, 400명, 500명, 600명으로 막 늘어났어요. 이제 예배드릴 자리가 없을 정도로 감당이 안 됐어요. 그러자 노의일 목사님은 "이 전도사. 아이들 그만 모아! 아이들만 모아들이면 어떡하려고 하느냐'하고 칭찬인지 야단인지 모를 말씀을 했어요. 그렇게 12월이 되자, 저를 중고등부로 보내더라고요. 중고등부도 금방금방 부흥해서 더블로 늘어나는 거예요. 이에 대해 목사님은 '대책 없다. 대책 없어'라고 하셨어요. 제 사례비는 전임여전도사 사례비를 주셨어요. 당시 대한신학교 교육전도사 중에서 사례비가 가장 많았어요. 무조건 한민교회로 와라 천호교회를 시무하다가 79년 7월 군 입대를 해요. 그때 노의일 목사님은 '이 전도사. 제대하면 반드시 우리 교회로 돌아와야 한다고 약속하라'고 하세요. 그래서 ‘알겠다’고 대답했죠. 막상 전역을 하고 천호교회에 가보니 노의일 목사님께서 안 계시는 거요. 천호교회를 사임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워싱턴 한인회소리, 라디오 방송을 하고 있었어요. 천호교회로 갈수가 없었어요. 그때 천호교회 부목사로 있던 분이 한민교회 담임목사로 계셨어요. 그 목사님께서 제가 전역한 것을 아시고는, 무조건 한민교회로 오라는 겁니다. 그렇게 그 교회에서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을 87년 2월에 졸업했어요. 세 번째 부르심 ② ‘내일 당장 보따리 싸’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 졸업 전 12월, 한민교회 김정훈 목사님이 갑자기 사임을 해요. 담임목사가 없는 한민교회에서 졸업을 앞둔 저를 계속 붙들어두려고 했어요. 그런데 12월 성탄절이 지나자마자 천호제일교회 김인식 목사님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김정훈 목사님이 소개했던 것 같아요. 김 목사님께서 '이 전도사. 우리 교회로 오시오' 그래서 저는 '목사님. 이 교회 담임목사님이 없습니다. 제가 가버리면 이 교회는 어떡합니까?' 송구영신예배를 드리고 인사라도 하고 정리를 하겠습니다'라고 했어요. 그러나 김인식 목사님께서는 '교역자는 떠날 때는 말없이 떠나는 거야. 미련 두지 말라. 오늘이라도 장로님께 떠나겠다고 말하고 내일 당장 보따리 싸라'는 거예요. 저는 한민교회 장로님께 다른 교회 청빙이 있어 사임해야겠다고 말했어요. 장로님은 사례비라도 올려드릴 테니 계속 남아달라고 했어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일단 결단하고 그 다음 날 바로 이사를 했어요. 그리고 천호제일교회에서 강도사, 부목사를 거쳐 5년 시무하고 1991년 4월 수원에서 동신교회를 개척했어요. <저작권자ⓒ합동기독신문 & www.ikidok.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BEST 뉴스 뉴스와 해설-헌법수호 목사 ·〈사설-총회총대 선출에 주목하라〉 어떻게 총회총대를 선출했는지를 봄 정기회 위로 목록 댓글 작성을 위해 로그인 해주세요. 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