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나라 시인 백거이는 29세에 진사가 되어 거침없이 자기 소신을 펼쳤다. 35세에 창안에서 현위(현위) 벼슬을 얻었다가, 40세에 어머니가 죽자 3년 간 벼슬을 잠시 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곧 형부상서(刑部尙書, 사법 담당 장관) 자리까지 올랐다가 75세에 사망했다. 백거이는 그렇게 정치적 풍파를 거치면서 점차 현실에 순응했다. 그는 자신의 詩에서 “벼슬에 나아가되 요직을 항하지 않았고 물러나되 깊은 산에는 들지 않는다”라는 시구처럼, 그는 관직을 유지하면서도 삶의 여유도 놓치지 않았다. 백거이는 한가로움을 함께할 친구로 학(鶴)만 한 게 없다며 평생 학(鶴)을 가까이했다.
정치적 풍파를 거치면서 점차 현실에 순응하는 것이 현실에 타협한다는 뜻이 아니다. 순응과 타협은 다르다. 순응은 알아가고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즉 하나님과 사람 그리고 사물과 상황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행위로 여겨진다. 순응하면 같이 살 수 있다. 그러나 타협은 주고받는, 일종의 나눠먹기다. 좋은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라고 타협만 되면 적절하게 포기하고 눈감아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타협은 불편한 동거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 타협의 끝에서 불화를 경험한다. 순응하면 한 마리 학을 얻을 수 있다. 타협하면 사나운 맹수가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