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마 제한이라는 법이 존재하지 않는 직책(총회 부서기, 부회록서기, 장로부총회장, 각 기관 이사장 등)은, 법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출마자가 이전에 2회 출마를 했다고 하더라도, 제105회 총회부터는 2회 이상 출마할 수 있다는 것이 “소급 적용이 안 된다”라는 의미이다.
○ 그러나 법은 이미 부총회장에 두 번 출마해서, 자신의 권리를 다 사용한 사람에게는 다시는 자격이 주어질 수 없다. 해당목사 자신도 두 번씩 출마하면서, 남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지난 2월 15일 예장합동 제108회 총회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권순웅 목사) 전체회의에서 부총회장에 3번 출마할 수 있느냐는 질의를 놓고 투표 끝에 ‘3회 출마는 불가하다’고 최종 결정했다(1차 투표 7:7, 2차 투표 8:7).
투표는 정치 행위다.
그런데 총회선관위가 헌법이나 규칙에 명문 되어 있는 성문법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법이 아닌 투표라는 정치 행위로 결정했다. 법해석에 있어서 법 논리로 따르지 않고 정치 행위로 결정하였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총회선관위는 정치하는 곳이 아니라 법을 지키는 곳이다.
총회선관위가 명문화된 법을 따르지 않고 투표라는 정치 행위를 시행한 것은, 총회선관위 위원 8명만 확보하면 그 다수가 법을 지배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양두구육
양두구육(羊頭狗肉)은 양 머리를 문에 걸어놓고 개고기라고 판다는 말이다. 즉 앞과 뒤가, 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앞에서는 법이요! 하고는 뒤로는 정치를 하는 총회선관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총회선관위원들이 법 논리를 수없이 주고받았다면, 반드시 법대로! 라고 해야 한다. 속으로는 투표할 생각을 하고, 총회선관위 위원 절반이 법 아닌 부분을(어느 쪽이든 한쪽은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택하고, 입으로는 법을 논쟁하였다는 것은 자기 양심을 속인 것이다. 염려스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양두구육을 가진 다른 시선은 또 있다.
한 시선은 “법적 능력 상실한 선관위, 정치하는 선관위?” 제목으로 주장하기를,
▲ 총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교회의 대표자들이 모인 곳이어야 한다.
▲ 공의로운 총회를 해치는 집단이 있다면 과감히 도려내야 한다.
▲ 일부 집단과 결탁하고 휘둘리는 언론은 그 존재가치를 잃어버린 찌라시! 라고 주장했다.
그려면,
1. 총회선관위는 법과 상관없이 정치하는 곳인가?
“소급 적용하지 않는다”는 명시적 법적 조항을 왜 자신들이 해석하는가? “법률이나 규칙 등이 시행되기 전의 시점까지 거슬러서 효력을 미치지 못한다”는 단순하고 명확한 내용을 이해 못 하는 사람은 총회선관위 자격은 물론 교회와 성도를 대표하는 자리에도 있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법률이나 규칙 등이 시행되기 전의 시점까지 거슬러서 효력을 미치지 못한다”는 단순하고 명확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총회선관위 일부 위원만이 아니었다. “법률이나 규칙이 시행되고 있는 자격에 대하여 소급 적용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법률과 규칙이 시행되는 것이라면 소급 적용에서 제외가 된다.
그러므로 이미 “부총회장은 2회만 가능하다”라는 법이 시행되고 있었다. “제105회 총회에서 동일 직책에는 2회만 입후보가 가능하다”라고 수정한 내용 또한 법이 시행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즉 “부총회장은 제101회 총회부터 지금까지 2회 출마만 가능하다”라는 법이 시행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는 말은 법 시행되기 전의 시점에해당자에게만 가능하고 법이 시행되고 있는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법을 주장하면서 정치적인 주장해서는 안 된다.
또 다른 시선은, ‘법리검토’라는 제목으로 “총회선거규정 제3장 제9조 제6항의 해석 문제”라고 했다. 즉 이 사안은 총회 선거규정에 관한 법해석의 문제로서 대법원의 판례법리, 통상적인 결의 우선의 원칙, 일반적인 법률 원칙 등의 법리 해석에 따라, 해당목사가 제109회 총회 부총회장 입후보 자격은 충분하다”라고 주장했다. 과연 해석의 문제인가? 아니다.
또 “소급 적용 불가의 원칙이란 법은 그 시행 이후에 성립하는 사실에 대하여만 효력을 바라고 과거의 사실에 대하여는 소급 적용할 수가 없다는 원칙을 말한다”라고 기재했다.
그렇다면 이미 법이 시행되었고, 이미 이 법률이 존재하는 가운데 부총회장은 2회만 출마가 가능하다, 즉 동일직책 2회만 가능하다는 법이 계속적으로 시행되고 있었다면, 이 법에 근거해서 2회를 출마하는 자는 이미 그 자격이 충족되었기에, 더 이상 출마할 수 없다는 것이 명문법이다.
과거 사실에 대하여 소급할 필요는 없다는 것은 법이 시행되지 않는 부분에 대하여 적용된다. 즉 부총회장은 제101회 총회부터 지금까지 2회만 가능하다. 때문에 여전히 부총회장은 3회 출마가 불가하다.
단지 제101회 총회에서 제105회 총회까지 서기, 부서기, 부회록서기, 장로부총회장, GMS 이사장 그리고 신문사 각 재단 이사장 등은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왜? 법이 시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급 적용 대상은, 법이 없었던 사람에 대해서 적용된다. 이미 법이 시행된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총회선관위가 부총회장 자격을 논하거나 제한하려고 하는 것은 법이 아니고 정치라고 주장하고 또 해석의 오류라고 하는 것이야말로 법이 아니라 정치 행위이며, 양두구육이다.
어찌됐든 선거란 개인의 권리를 철저하게 보장해야 한다. 그런데 내 권리를 주장하다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위법 행위이다. 다시 말하면 개인의 탐심, 그리고 어떤 쓴 뿌리 그리고 죽은 양심에서 나오는 죄의 권리를 가지고 법을 어기서는 안 된다.
법은 순수하게 개인의 권리를 철저하게 보장해 준다
법은 이미 부총회장에 두 번 출마해서, 자신의 권리를 다 사용한 사람에게는 다시는 자격이 주어질 수 없다. 해당목사 자신도 두 번씩 출마하면서, 남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해당목사가 소속된 노회의 다른 이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자기의 권리는 접어야 한다. 구차하게 자기 권리만을 주장하는 것도 법을 넘어서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총회선관위의 방향과 결정은 옳다. 그러나 그 결정이 투표라는 정치 행위로 결정하는 상황까지 갈 수 밖에 없는 현실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럼에도 법 해석에 대한 주장과 논란을 총회선관위가 치열한 논쟁 끝에 결말을 끌어내는 것은 대단한 용기 있는 결정으로 평가한다. 앞으로는 법은 법대로 적용하고 모든 총회선관위는 반드시 법을 지켜야 한다.
결론적으로,
탐욕(명예욕, 권력욕)이 충동 죄를 이기는 것이 목사요 성직자이다. 또 남을 배려하는 것이, 선이요의로움이다. 지금까지 남의 권리와 충돌하였다면 이제는 자기 탐욕을 버릴 때다. 부총회장에 3회 출마하려는 해당목사가 그 충동 죄를 이기지 못할 때 주위에서 도와야 한다. 그것이 당회요, 노회요, 총회요, 총회선관위다.
마지막으로 논란 중에 있는 소급적용에 대해 정리해 본다.
소급 적용이란? ○ 이전에 있는 법에 대하여서는 소급 적용이 안 된다. ○ 이 전에 법이 없어도 소급 적용이 안 된다.
부총회장은 법이 존재하고 있었고 그 법은 수정되지 않았으며 계속되고 있었다. 그 법이 있을 때 제1회 출마를 없애고 제109회 총회 부총회장 출마를 2회로 볼 수가 없다. 부총회장에 2회 출마만 가능하다는 제한법은 제101회 총회부터 지금까지 계속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 출마 제한이라는 법이 존재하지 않는 다른 직책(총회 부서기, 부회록서기, 장로부총회장, 각 기관 이사장 등)은, 법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출마자가 이전에 2회 출마를 했다고 하더라도, 제105회 총회부터는 2회 이상 출마할 수 있다는 것이 “소급 적용이 안 된다”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정치 행위로 법을 결정할 수는 없다.
<최성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