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눈물의 동산’ ‘기적의 동산’ ‘능력의 동산’에서의 등산기도(登山祈禱)
보내는분 이메일
받는분 이메일

‘눈물의 동산’ ‘기적의 동산’ ‘능력의 동산’에서의 등산기도(登山祈禱)

기사입력 2017.11.09 13:2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내용 메일로 보내기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눈물의 동산’ ‘기적의 동산’ ‘능력의 동산에서의 등산기도(登山祈禱)
 
김병희.jpg
 
김병희 목사
전 국토의 7할이 산악지형인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산을 숭배하는 신앙을 간직해 왔다. 불교가 한반도에 정착할 때도 우리나라의 전통 신앙인 산신숭배와 샤머니즘 등과 잘 융화되었기 때문에 단시간에 발전할 수 있었다. 지금도 사찰 위쪽에 있는 산신각이나 칠성각독성각 등은 불교가 산신숭배와 융합한 흔적들이다.
 
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산을 신에 속하는 세계로 보았다. 고대 그리스에서 올림포스를 비롯한 산은 신의 세계로 볼 수 있으며, 불교의 수미산, 유대교의 시내산 등을 보아도 산이 종교와 결부되는 현상은 보편적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산을 성스러운 공간으로 보는 신앙임을 알 수 있다. 특히 도교에 뿌리를 두고 있는 칠성신앙은 민간은 물론이고 궁중에서부터 사대부에 이르기까지 각 계층의 신앙에서 보편적 모습을 띠고 있다.
 
길선주 목사가 회심하기 전, 그는 도교에 영향을 받아 수시로 입산하여 천도교의 경문을 일만 번 읽으면서 천도교 수행을 하였다. 그러던 그가 교회로 입교하면서 입교한 첫날부터 기도와 성경연구에 몰두하였고 매일 세 번씩 정시 기도를 가졌다. 길선주 목사의 영향으로 한국 개신교에서 행해지는 기도 가운데에서 특히 이색적인 것으로 등산기도(登山祈禱)’를 들 수 있다. 등산기도는 민간신앙의 습속(習俗)을 따라 길선주 목사 외에도 그 당시 성도들에게 자연스럽게 모세의 시내산에서의 소명기도와 예수님의 겟세마네에서의 결단기도를 연상(聯想)시키며 등산기도를 행하게 하였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는 등산기도가 전혀 낯설지 않게 여겨졌다.
 
이 등산기도는 1922년 경북노회 대구시찰 보고에서 등산기도, 1925년 경북노회 동편시찰 보고에서는 산기도, 1984년 대구성광교회 당회록에는 입산기도, 2000년에는 산상기도로 명칭이 변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초기 개신교가 전래되면서 신앙에 대한 명칭들이 아직 정착되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이다.
대부분 한국적인 기도에 관한 문화들은 1903년 원산에서 시작되어,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을 거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인다. 그 전개과정을 보면 평양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1925년 대구·경북지방에서 산기도가 보편적인 기독교 기도문화로 자리 잡은 것을 볼 때 등산기도는 1920년대에 와서 전국적으로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교인들은 신앙의 고비마다 산을 찾아 모세와 같이 소명을 위해 기도하였다. 때론 예수님처럼 어떤 일을 두고 금식하며 결단하는 기도를 하였다. 한국교회 많은 성도들이 산을 찾아 정기적인 산기도를 하였는데 그 중에 주기철 목사는 문창교회를 시무하실 때 자주 마산 학봉에 있는 십자바위에서 무릎 끓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 기도로 훗날 신사참배를 거부할 수 있고 순교자의 길을 갈 수 있었다. 박윤선 목사는 한국전쟁 당시 장안산, 지리산에서 36개월 동안 산기도하였다. 한국 주경신학의 일인자인 그는 성경해석이 막힐 때마다 산에 올라가 부르짖으며 기도하였다. 그는 성경을 해석할 때마다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마무리하였다.
 
이와 같이 개인적인 동기로 산을 찾아 기도한 등산기도는 1940년 대한수도원이 세워지면서 많은 한국교회와 교인들이 산 속 깊은 곳에 기도원을 건립하였다. 여기에 교회마다 연합회마다 개인마다 기도원을 찾게 되었고 산상기도운동이 일어났다. 이 산상기도의 목적은 특별한 은사를 체험하거나, 소명과 사명을 결단하거나, 병을 치료하고, 축복(자신이나 가족을 위한)을 받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성도들은 산기도를 해야 기도의 응답을 받는 줄로 생각할 정도였다. 성도들은 명산마다 움막을 짓고 또는 큰 바위틈 범굴에서 기도가 응답될 때까지 산을 내려오지 않았다. 기도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소나무를 뽑아야 한다고 믿고 소나무를 붙잡고 몸부림치며 밤새도록 소리소리 지르며 간절하게 기도했다. 산상기도의 열기는 생동감이 넘치는 교회를 만들었고, 교회는 날마다 부흥을 이어갔다. 이제는 먼 이야기가 되어가는 한국교회의 특징인 산상기도운동을 회복하여 과거 수많은 성도들이 산을 찾아 하나님의 임재 속에 교회 부흥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개인의 문제를 주님 앞에 내놓고 금식하며 기도했던 눈물의 동산’ ‘기적의 동산’ ‘능력의 동산을 다시 찾기를 바란다.
<저작권자ⓒ합동기독신문 & www.ikidok.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합동기독신문 | 등록번호:서울,046796 | 등록일:2017.8.25 | 발행인:최성관 | 편집인:최성관 | 개인정보관리·청소년보호책임자:이경선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도림로59길 8 | 전화번호:(02)848-0108, 메일 : gsiki@hanmail.net

    합동기독신문의 기사 등 모든 컨텐츠에 대한 무단 전재·복사·배포를 금합니다. Copyright © 2017 합동기독신문 All rights reserved.  

     

                   

합동기독신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