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작금의 총신의 어려움을 보며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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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의 총신의 어려움을 보며 말한다

기사입력 2017.12.05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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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의 총신의 어려움을 보며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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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희 장로
광주전남장로회 회장 / 함평교회
 
한국교회는 올해가 '종교개혁 500주년'이라며 큰 의미를 두고 상당한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개혁'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최근 한국교회는 많은 이들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다.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등록 교인이 10만 명 넘는다는 명성교회의 부자세습은 500년 전 중세교회보다 더 철저한 교회 개혁이 필요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말하고 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해에 개혁 대상이 되어 버린 대형교회의 모습이 개혁되어야 할 교회의 단편일 뿐이라는 사실이 안타깝다.
 
종교개혁은 사회개혁이나 혁신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인간성의 변화는 진리로 말미암아 일어난다. 일반적으로 종교개혁하면 루터를 떠올리지만, 사실상 개혁 신학을 꽃피운 이는 칼빈이다. 칼빈은 개혁 신학의 모든 것을 한 그릇에 담아 기독교강요라는 책으로 정리했다. 더불어 자신이 조직한 장로회를 통해 장로정치를 실현했던 제네바에서 아카데미를 설립하여 유럽의 모든 사람이 와서 개혁 신학을 배울 수 있게 했다. 이 점에 있어서 칼빈에게서 자유로울 수 있는 개혁 신앙인은 없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칼빈이 학문하는 자세나 목회하는 자세가 어떠했는지에 한국교회는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 것 같다. 오늘날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지도자들은 칼빈에게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공부했던 모습을 배워야 한다.
 
우리가 속해 있는 합동교단도 여러 교단 내 산적한 현안들과 총신대학교 사태들을 통해서 볼 때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이 말은 교회가 특별하게 '개혁된' 때가 있었다는 사실을 말한다. 종교개혁 500주년은 개혁된 때를 기억하며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질 때 의미를 갖는다. 또한, 개혁자들의 모토는 개인이든 교회든 본질상 늘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함을 뜻하기도 한다.
 
현재 학내의 여러 문제를 안고 있는 신학교는 감신대, 총신대, 한신대, 침신대, 평택대 등이라고 한다. 그러나 총신대 사태는 한국의 모든 신학교들을 끌어들인다. 현 사태의 근본 문제는 교단신학교와 사학법 상의 대학교에 관한 문제이다. 즉 자신들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 문제이다. 소위 총회와 학교 간에 신학적 기초는 거의 고려된 바 없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이번 총신대 사태에서도 명성교회와 마찬가지로 사유화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무슨 정관 개정이니(임기 제한의 정년 조항 삭제, 불구속 기소돼도 직무 유지, 이사 자격의 변경 등), 2.000만 원 뇌물로 인한 재판이니(특별기도회), 그리고 총신대 이사들이 속한 노회에 이들을 정직하고 제명하라는 총회의 명령이니 이게 안 되면 노회 해산 혹은 폐지니 현 총장 낙인의 졸업장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니(총회), 여튼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난무한다.
 
이에 대하여 학생들은 수업거부’, ‘졸업거부’, ‘총신 도둑질이라는 팻말을 내걸고(특별기도회) ‘총신이 총회의 것도 총장 것도 아닌 하나님의 것이라 하며(법원 밖 시위), 불의가 있을 때 불의에 침묵하는 게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며 불의에 항거해야 한다고 한다.
 
신학교는 세상보다 더 지독한 정치의 장이며 교단 정치의 연장이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각종 정치와 이전투구, 권력, 줄타기, 경쟁, 굴종과 같은 것들만 보고 배운다. 그렇게 분쟁과 싸움, 정치, 편 가르기 같은 폭력적 상황만 접한 신학생이 나중에 교회에 가게 되면 교회는 분쟁과 권력의 이전투구로 점철된다.
 
지금 한국교회에 나타난 악한 모습은 또한 과거로부터 계속되어 온 교단 정치와 관계가 깊다. 교단 권력이 하나님과 복음보다 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순수한 신학생은 사라지고 괴물만 덩그러니 남게 된다. 하나님과 복음 그리고 고통 받는 이웃이 아니라, 교단의 권력만 잡으면 존경받고 명예롭고 큰 목회를 할 수 있는 왜곡된 현실이 한국교회를 괴롭히고 있다.
 
왜곡된 교권주의는 비단 과거의 일이 아니라 신학교가 교단 권력 투쟁의 장이 된 지금 이 순간에도 모든 신학생을 위협하고 있다. 신학교의 상황은 교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더 심각하다.
 
개신교의 개신교다움을 재발견하는 것은 개신교 자체의 정체성에도 부합하고, 한국 사회와 역사 속에서 바람직한 존재 방식으로 찾는 일과 직결된다. 역사 앞에, 하나님 앞에서 총회든 신학교든 늘 갱신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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